※ 서울시청년활동지원센터는 다양한 영역에서 청년과 맞닿아있는 분들의 생각과 이야기를 #2022_서울청년칼럼 을 통해 전할 예정입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2022_서울청년칼럼 #5] 영 케어러: 새로운 관심에서 돌봄에 대한 성찰로
- 정익중, 이화여자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영 케어러'란 질병, 장애, 정신건강 등의 문제를 가진 가족구성원을 직접 돌보는 아동·청소년·청년을 말한다. 우리는 이들을 효녀, 효자, 소년소녀가장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러왔다. 언제 완치될지 모르는 아픈 가족을 돌본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쉽지 않은 일이다. 미래를 꿈꿀 나이에 돌봄·생계·학업(또는 취업)이라는 삼중고를 짊어진 채 끝이 보이지 않는 일상을 살아가는 영 케어러는 육체적 및 정신적 소진뿐만 아니라 생활고, 사회적 고립감, 좌절감을 겪기 쉽다. 도움 없이 이 어려움이 장기화될 경우, 극단적으로는 간병 살인의 방아쇠가 될 가능성이 높다. 2021년 4월 뇌출혈로 치료를 받다 퇴원한 아버지를 방치해 숨지게 한 22살 청년의 ‘간병 살인’ 사건이 드러나면서 영 케어러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커졌고, 이는 보건복지부의 가족돌봄청년 정책 수립까지 이어졌다. 간병 살인을 저지른 이들 상당수가 돌봄에 매달리느라 변변한 수입이 없었고, 생활고와 사회적 고립이 간병 살인의 결정적 이유가 되었다는 사실은 단순하게 이를 개인 범죄로 치부할 게 아니라 사회구조적 대응이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영 케어러는 본인의 미래와 가족 돌봄을 맞바꿔야 하는 막다른 길에 놓여 평온한 일상이 사라지고 계획된 인생이 흐트러져 학업은 물론 취업, 사회 참여 등 생애 이행을 위한 결정적인 시간과 기회를 놓치게 된다. 미래를 준비할 시간이 부족해지면 자연스레 다시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연결되는 악순환이 반복되므로 국가는 돌봄에 소요되는 양적인 시간을 일부 지원해 영 케어러가 지친 일상으로부터 회복하고 미래를 설계할 수 있도록 시간적, 경제적 지원을 해야 한다. 기존의 노인 장기요양서비스와 장애인 활동보조서비스 등 이용 가능한 다양한 서비스와 지원을 연계하여 영 케어러가 집에서 맡는 돌봄의 부담과 책임을 줄여가야 한다.
또한 영 케어러가 돌봄을 하면서 본인의 돌봄 받을 권리가 소외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또래와 동떨어진 채 간병하다 보면 사회적으로 고립되기 쉽고, 이 부담은 우울과 절망감으로 이어져 극단적인 생각에 이르는 등 심리적 부담도 커진다. 따라서 가능하면 빨리 영 케어러를 발굴하고, 돌봄 상황을 함께 고민해 줄 성인이나 전문가가 연결되어야 한다. 공통된 경험을 하고 있는 사람들과 정서적으로 상호 지지하고 필요한 정보를 나눌 수 있도록 영 케어러 또래와의 교류도 필요하다. 영 케어러의 돌봄 받을 권리 회복은 본인이 자신을 잘 돌봐야만 타인을 돌보는 일도 지속할 수 있기 때문에 가족구성원인 환자에게도 유익하다. 영 케어러의 부담을 사회 공동체가 함께 분담하려는 인식개선도 필요하다. 영 케어러에게는 힘들 때 타인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사회 공동체는 이들이 도움 요청을 하기 쉬운 환경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지금 우리 사회 돌봄은 그 부담을 누군가 떠맡는 순간, 그것이 얼마나 고단한지 잊어버린다. 남성 생계부양자와 가정주부로 구성된 과거의 ‘정상가족’ 하에서 돌봄은 무상의 가사일이며 여성의 책무로 간주되면서 며느리, 딸 등이 돌봄을 맡게 될 가능성이 높았지만, 현재에는 끝을 알 수 없고 대가도 없는 돌봄에 자신을 희생하길 모두 기피한다. 여성의 보이지 않는 희생으로 이루어졌던 돌봄을 전 사회가 분담한다는 것이 아직 우리 사회에서 익숙하지 않다. 그런 와중에 영 케어러는 가족에게 떠맡기고 외면했던 돌봄을 부각시켰다. 정부의 가족돌봄청년 지원은 아주 의미 있는 첫 걸음이지만 단지 영 케어러를 지원하는 데서 그쳐서는 안되며 돌봄이 담고 있는 중요한 의미에 대한 전면적인 성찰과 고민으로 이어져야 한다. 돌봄은 이리저리 떠밀리며 여성, 청년, 이주노동자 등 사회나 가정의 최약자에게 그 책임이 억지로 맡겨지는 현실은 불평등하고 비민주적일 뿐만 아니라 돌봄에 대한 사회적 가치를 낮추는 일이다. 따라서 일상에서 이루어져 간과되기 쉬운 돌봄에 대한 사회적 가치를 높이려는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서울 성동구에서 조례로 육아, 가사, 돌봄 같은 비공식 노동에 경력인정서를 발급할 근거*를 마련하고, 돌봄 시간을 아무것도 하지 않는 무의미한 공백이 아니라 의미 있는 경력이 될 수 있도록 하는 시도는 매우 고무적이다. 돌봄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나 할 수 없다는 것을 한 번쯤 경험해 이미 알고 있다. 우리 자신도 언젠가 돌봄에 대한 낮은 가치의 희생자가 될 수 있음을 기억하고, 우리가 경험하는 돌봄 위기는 개인이나 가족의 돌봄 책임을 당연하게 여기고 그 가치를 제대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벌어지는 문제라는 점을 절대 잊지 말아야 한다.
* 「서울특별시 성동구 경력보유여성등의 존중 및 권익 증진에 관한 조례」 [시행 2021.11.4.] [서울특별시성동구조례 제1469호, 2021.11.4. 제정]
※ 서울시청년활동지원센터는 다양한 영역에서 청년과 맞닿아있는 분들의 생각과 이야기를 #2022_서울청년칼럼 을 통해 전할 예정입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2022_서울청년칼럼 #5] 영 케어러: 새로운 관심에서 돌봄에 대한 성찰로
- 정익중, 이화여자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영 케어러'란 질병, 장애, 정신건강 등의 문제를 가진 가족구성원을 직접 돌보는 아동·청소년·청년을 말한다. 우리는 이들을 효녀, 효자, 소년소녀가장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러왔다. 언제 완치될지 모르는 아픈 가족을 돌본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쉽지 않은 일이다. 미래를 꿈꿀 나이에 돌봄·생계·학업(또는 취업)이라는 삼중고를 짊어진 채 끝이 보이지 않는 일상을 살아가는 영 케어러는 육체적 및 정신적 소진뿐만 아니라 생활고, 사회적 고립감, 좌절감을 겪기 쉽다. 도움 없이 이 어려움이 장기화될 경우, 극단적으로는 간병 살인의 방아쇠가 될 가능성이 높다. 2021년 4월 뇌출혈로 치료를 받다 퇴원한 아버지를 방치해 숨지게 한 22살 청년의 ‘간병 살인’ 사건이 드러나면서 영 케어러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커졌고, 이는 보건복지부의 가족돌봄청년 정책 수립까지 이어졌다. 간병 살인을 저지른 이들 상당수가 돌봄에 매달리느라 변변한 수입이 없었고, 생활고와 사회적 고립이 간병 살인의 결정적 이유가 되었다는 사실은 단순하게 이를 개인 범죄로 치부할 게 아니라 사회구조적 대응이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영 케어러는 본인의 미래와 가족 돌봄을 맞바꿔야 하는 막다른 길에 놓여 평온한 일상이 사라지고 계획된 인생이 흐트러져 학업은 물론 취업, 사회 참여 등 생애 이행을 위한 결정적인 시간과 기회를 놓치게 된다. 미래를 준비할 시간이 부족해지면 자연스레 다시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연결되는 악순환이 반복되므로 국가는 돌봄에 소요되는 양적인 시간을 일부 지원해 영 케어러가 지친 일상으로부터 회복하고 미래를 설계할 수 있도록 시간적, 경제적 지원을 해야 한다. 기존의 노인 장기요양서비스와 장애인 활동보조서비스 등 이용 가능한 다양한 서비스와 지원을 연계하여 영 케어러가 집에서 맡는 돌봄의 부담과 책임을 줄여가야 한다.
또한 영 케어러가 돌봄을 하면서 본인의 돌봄 받을 권리가 소외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또래와 동떨어진 채 간병하다 보면 사회적으로 고립되기 쉽고, 이 부담은 우울과 절망감으로 이어져 극단적인 생각에 이르는 등 심리적 부담도 커진다. 따라서 가능하면 빨리 영 케어러를 발굴하고, 돌봄 상황을 함께 고민해 줄 성인이나 전문가가 연결되어야 한다. 공통된 경험을 하고 있는 사람들과 정서적으로 상호 지지하고 필요한 정보를 나눌 수 있도록 영 케어러 또래와의 교류도 필요하다. 영 케어러의 돌봄 받을 권리 회복은 본인이 자신을 잘 돌봐야만 타인을 돌보는 일도 지속할 수 있기 때문에 가족구성원인 환자에게도 유익하다. 영 케어러의 부담을 사회 공동체가 함께 분담하려는 인식개선도 필요하다. 영 케어러에게는 힘들 때 타인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사회 공동체는 이들이 도움 요청을 하기 쉬운 환경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지금 우리 사회 돌봄은 그 부담을 누군가 떠맡는 순간, 그것이 얼마나 고단한지 잊어버린다. 남성 생계부양자와 가정주부로 구성된 과거의 ‘정상가족’ 하에서 돌봄은 무상의 가사일이며 여성의 책무로 간주되면서 며느리, 딸 등이 돌봄을 맡게 될 가능성이 높았지만, 현재에는 끝을 알 수 없고 대가도 없는 돌봄에 자신을 희생하길 모두 기피한다. 여성의 보이지 않는 희생으로 이루어졌던 돌봄을 전 사회가 분담한다는 것이 아직 우리 사회에서 익숙하지 않다. 그런 와중에 영 케어러는 가족에게 떠맡기고 외면했던 돌봄을 부각시켰다. 정부의 가족돌봄청년 지원은 아주 의미 있는 첫 걸음이지만 단지 영 케어러를 지원하는 데서 그쳐서는 안되며 돌봄이 담고 있는 중요한 의미에 대한 전면적인 성찰과 고민으로 이어져야 한다. 돌봄은 이리저리 떠밀리며 여성, 청년, 이주노동자 등 사회나 가정의 최약자에게 그 책임이 억지로 맡겨지는 현실은 불평등하고 비민주적일 뿐만 아니라 돌봄에 대한 사회적 가치를 낮추는 일이다. 따라서 일상에서 이루어져 간과되기 쉬운 돌봄에 대한 사회적 가치를 높이려는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서울 성동구에서 조례로 육아, 가사, 돌봄 같은 비공식 노동에 경력인정서를 발급할 근거*를 마련하고, 돌봄 시간을 아무것도 하지 않는 무의미한 공백이 아니라 의미 있는 경력이 될 수 있도록 하는 시도는 매우 고무적이다. 돌봄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나 할 수 없다는 것을 한 번쯤 경험해 이미 알고 있다. 우리 자신도 언젠가 돌봄에 대한 낮은 가치의 희생자가 될 수 있음을 기억하고, 우리가 경험하는 돌봄 위기는 개인이나 가족의 돌봄 책임을 당연하게 여기고 그 가치를 제대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벌어지는 문제라는 점을 절대 잊지 말아야 한다.
* 「서울특별시 성동구 경력보유여성등의 존중 및 권익 증진에 관한 조례」 [시행 2021.11.4.] [서울특별시성동구조례 제1469호, 2021.11.4. 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