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2.18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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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적으로 만난 삶의 힘들

성취하지 않아도 삶은 이어진다. 하지만 세상에 드러난 ‘청년’은 성취하지 않으면 꼭 삶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취업이나 창업을 준비하거나 진로를 찾는 상태에 있는 청년은 어딘가 불쌍하게 비치고, 자신의 진로를 찾고 무언가 성취한 청년은 대단하게 비친다. 무언가 준비하고 기다리는 과정에서도 주체적이고 대단한 삶의 면면이 있는데, 그건 세상의 관심사가 아닌 듯하다.

무엇을 성취했는지, 얼마나 유명해졌는지, 이 세상의 승자가 됐는지를 떠나 온전히 청년의 이야기를 들어볼 수는 없을까? 사회적 이슈인 ‘청년 문제’로 환원되기 전에, 만나서 들을 수 있는 삶의 이야기를 잘 정돈한 매체는 없을까? 격주로 찾아오는 ‘1934레터’는 내가 품었던 갈증 같은 질문을 서서히 해소해줬다.

나도 매번 참여한 뉴스레터였지만, 이번에는 어떤 사람의 이야기가 실릴까 기대한 것도 사실이다. 코로나19 시기에 공무원 준비를 하는 청년이나 코로나19로 피해를 본 직군의 청년 이야기는 그들을 불쌍한 존재로 비추기 이전에 그들이 가진 삶의 힘을 느끼게 해줬다. 그 힘으로 일상을 어떻게 끌고 가는지가 제일 먼저 느껴졌다.

코로나 시기, 정기적으로 찾아오는 뉴스레터의 의미는 더 커졌을지 모른다. 정기적인 만남처럼 삶을 크게 변화시키는 장치도 흔치 않다. 사회경제적인 성취가 아닌 삶의 힘이 자주 드러날 때, 다른 청년들도 그 힘을 참조하면서 자신의 삶을 더 주체적으로 꾸릴 수 있다. 앞으로도 ‘1934레터’가 서로 참조할 수 있는 삶의 힘에 더 많이 주목했으면 좋겠다. 한 해 동안 ‘청년 연구 함께 읽기’도 각자의 힘을 기르는 데 도움이 되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