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0.05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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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대면 만남에서도 대면이 주는 풍성함을 느낄 수 있을까?

2011년에 나온 SF스릴러 <더 씽>을 봤다. 남극에서 외계인과 사투를 벌어지는 1982년에 나온 걸작 공포영화 <괴물>의 프리퀄 영화다. 영화 속 외계인은 생명체와 접촉하면, 생명체를 죽이고 복제해서 그 생명체를 연기한다. 영화는 남극이라는 고립된 환경에서 누가 외계인인지 알아맞추는 진실게임이다.(절대 추천할 영화는 아니다.)

극 중 주인공은 외계인으로 의심되는 사람들을 한곳에 모아둔다. 영화는 외계인으로 의심되는 사람들과 외계인이 아닌 사람들을 대치시키면서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그 장면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심히 불편했다. 접촉으로 감염되는 외계인이 누군지 모르는 상황에서 의심되는 사람들을 한곳에 모아둔 탓이다.

“한 명, 한 명 떨어져 있어야 안전한 거 아니야?” 몇 개월의 감염병 상황을 겪으니,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이었다. 거리두기와 언택트(untact)가 어느새 습관처럼 배어버렸다.

대면할 때 우리의 감각은 총동원된다

“2020년 지원금 외 지원사업에서는 비대면적 방식의 만남이나 상담 프로그램에 좀 더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겠다.” 서울시청년활동지원센터 연구보고서 06에 수록된 <2019년 서울시 청년활동지원사업 참여자 분석 연구 및 2018년 참여자 추적조사 연구>에 실린 제언이다. 보고서는 2020년 1월에 발간되었다. 비대면이 필요하다고 한 이유는 코로나19 때문이 아니었다. 청년들이 대면 접촉에 부담을 많이 느끼기 때문이었다.

한 모임에서 참여자는 사람 한 번 만나면 이틀은 쉬어야 한다고 말한다. 원래 사람과 만나기보다 SNS나 메신저로 간편하게 소통해왔기에 사람을 만나면 평소 쓰지 않던 에너지를 쓴단다. 그만큼 충천 시간도 필요하다. 그 자리에 있던 다른 참여자들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코로나19 이전에도 청년에게는 언택트가 습관이었을지도 모른다.

달라진 게 있다면 이전 언택트는 선택이었지만, 이후 언택트는 강제라는 점이다. 강제된 언택트는 대면이 가진 소통 가능성 또한 빼앗는다. 누군가 대면할 때 우리는 시각, 청각, 후각, 촉각 등을 총동원한다. 목소리의 높낮이에 그 사람의 마음을 느끼고, 눈짓 하나에 분위기를 파악해왔기 때문이다. 그게 부담이 되기도 했지만, 한편 만남을 풍성하게 해주는 요소이기도 했다. 비대면 만남에서도 대면이 주는 풍성함을 느낄 수 있을까? 다 같이 곱씹어봐야 할 질문이다.

조기현

2017년부터 3년간 청년반장으로 어슬렁반상회 ‘자취영화’, ‘내 생애 한 컷’을 진행했다. 2018년 청년수당에 참여했다. 무언가 읽고 보는 시간들이 삶의 동력이 됐다. 누군가의 삶의 연료가 되고 싶어서 무언가 찍기도 했고 쓰기도 했다. 책 <아빠의 아빠가 됐다>, 영화 <건설의 벽>, 공연 <취업의 카프카> 등이 그 결과다. 서울시 청년불평등 완화 범사회적 대화기구의 공동위원장을 맡고 있다.

메일: ruaendrlgus@naver.com

커버 일러스트. @yalga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