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1.22 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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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리의 상상력에 힘을 더하는 것. 




글. 이다혜 


 프리랜서 N년차, 글 쓰고 기획합니다. 지면으로 만나는 느슨한 프리랜서 연대, 프리랜서 매거진 

〈프리낫프리 Free, not free〉를 만듭니다. 사주에 일복이 많다고 해서 좋았는데, 사실 돈복이 많았어야 한다는 걸 서른 넘어 알게 된 사람. 유연하게 노동하며 주체적인 삶을 향유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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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프리랜서로 일하게 됐어요?”

“언제부터 프리랜서로 일했어요?”


프리랜서 매거진 <프리낫프리 Free, not free> 인터뷰에서 가장 자주 던진 질문을 찾는다면 아마 이 두 개의 질문이 아닐까. 프리랜서 매거진을 만드는 편집장으로 강연을 할 때, 프리랜서로 일하며 만나는 많은 사람들에게 내가 자주 듣는 질문도 마찬가지로 “어떻게, 언제부터 프리랜서로 일하게 되었느냐?” 이다. 심지어 매거진 <프리낫프리 Free, not free> 창간호의 첫 번째 글은 ‘나는 어떻게 프리랜서가 되었는가?’에 대한 질문에 서로 다른 이유로 프리랜서가 된 두 사람의 이야기를 담은 칼럼이었다. 프리랜서든 프리랜서가 아니든 ‘프리랜서’라는 형태로 노동하는 사람들이 ‘어쩌다’ 그렇게 일하게 되었는지 궁금해하는 걸 보면, 아직까지도 실제 프리랜서로 일한다는 것이 흔한 노동의 형태는 아닌 것 같다. 당연하다. 열심히 일한다고 해서 약속된 돈을 매달 꼬박꼬박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연봉이 오르는 것도 아니고 자칫 잘못하면 사회에서 잊혀지기 십상인 삶.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역꾸역 그 길을 가는 사람들이 있다. 혼자 영업하고 실무하고 마케팅하고 행정처리까지 하며, 내가 사장이고 부장이고 대리고 사원인 삶을 사는 사람들. 그러면서 최저임금 언저리를 맴도는 수입을 내는 사람들이 있다. (2018년 서울시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프리랜서 평균 월수입은 152만9천 원이었다.) 



일자리의 상상력


회사를 다닐 때였다. 휴일도 공휴일도 아닌 평범한 날, 나는 연차를 내고 어딘가로 가고 있었다. 지하철을 탔다. 평일 오후 2시. 지하철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나처럼 어딘가로 흘러가고 있었다. 분명히 직장에 있을법한 나이와 모습의 사람들이 특별할 것 없는 평일 오후 2시에 지하철에 있었다. 


“저 사람들은 회사 안 가나..?” 


나는 문득 놀라고 말았다. 풍경에 놀랐다기보다는, 이런 생각을 하는 나에게 놀랐다. 20대 후반, 내가 생각한 서른 언저리의 어른은 아홉 시에 출근해 여섯 시에 퇴근하고, 퇴근 후에는 운동을 하거나 취미활동을 하거나 아니면 집에 가서 멍이라도 때리는 그런 삶을 사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아침 아홉 시와 저녁 여섯  시 사이에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지하철에 있는 풍경이 낯설었다. 회사원이 아닌 삶을 상상하기에 세상이 나에게 던져준 삶의 선택지가 너무도 협소했다. 


내가 대학을 졸업할 때쯤 대부분의 학생들은 ‘대기업과 같이 안정적인 기업에 갈 것인가, 대학원에 갈 것인가 아니면 국가고시를 볼 것인가.’ 이 몇 가지 선택지를 저울질하며 불안한 사회에서 어떻게 가난하지 않게 사회가 기대하는 어른이 될 수 있을지 고민했다. 대부분은 그 직종과 산업, 업무가 가진 속성, 예를 들어 일의 힘듦, 성취감, 미래지향성, 개인의 기질 및 능력과의 궁합 등을 깊게 들여다보지 못하고 지원 가능한, 되도록 안정적이며 높은 연봉의 어떤 자리에 열심히 나의 기질과 능력 개인적 삶의 히스토리를 맞춰갔다. 자소설이라는 말이 나왔던 것도 이 때문이리라. 취업난을 뚫고 회사에 취직한 신입사원의 1년 내 이직률이 높다는 기사가 이제는 매년 ‘추석, 귀성길 오후 00시 가장 혼잡’과 같은 느낌으로 취업시즌만 되면 연례행사처럼 올라온다. 사실, 앞서 말한 방식으로 취직했다면, 그 회사에 계속 남아있는 게 용할 정도다. 마치 조선시대에 결혼하는 날 배우자를 만나는 꼴이다. “어느 양반댁에 도령이 있는데, 키가 훤칠하고 인품이 훌륭하더라.” 라는 정보만 있고 그 양반댁의 문화가 어떻고, 나와 도령의 성격이 잘 맞을지 전혀 모르는 상태로 결혼을 감행하는 꼴이다. 


서른 즈음 짧지만, 밀도 있는 회사 생활을 뒤로하고 프리랜서가 됐다. 프리랜서로 일하게 된 계기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나는 늘 다른 대답을 한다. 쉼 없이 일하며 건강이 나빠져 회사를 그만둔 것이 프리랜서의 시작이었다거나 더 주체적으로 일하고 싶어서라는 답도 한다. 회사가 내 미래를 책임져 줄 수 없기에 한 살이라도 어릴 때 내 것을 만들기 위해 프리랜서로 일을 시작했다고 말하기도 하고, 저임금에 강도 높은 노동을 하느니 공도 힘듦도 혼자 책임지는 삶을 살겠다고 말하기도 한다. 내가 원하는 장소에서 일하고 싶은 욕망이 있다는 답도 있다. 조직 생활에 쏟아야 하는 에너지가 피로하기 때문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 모든 이유가 내가 프리랜서라는 노동의 형태를 선택하게 된 계기다. 복합적인 이유로 나는 프리랜서로 살고 있다. 


프리랜서로 일하며 회사 밖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많아졌다. 자영업자이자 프리랜서인 사람, 알바를 하며 프리랜서로 일하는 사람, 프리랜서와 회사원의 삶을 아슬아슬하게 오가는 사람 등. 한 번도 회사에 다녀보지 않은 사람도 있었고, 회사를 다니고 싶지만, 하고자 하는 일이 마땅히 정규직 일자리가 있는 분야가 아니어서 어쩔 수 없이 프리랜서로 일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쪽은 대부분 창작 분야의 프리랜서이다.) 개인의 삶은 다면적이다. 하나의 면으로 그 사람의 삶을 평가할 수 없고, 개인 또한 내 삶을 하나의 이유, 하나의 평면적인 답으로 이끌 수 없다. 그래서 세상에는 수많은 갈래로 나름의 삶을 꾸리는 개인이 가득하다. 백 명의 사람에게는 백 가지의 삶이 있다. 백 가지의 기쁨과 슬픔, 성취와 고됨이 있다. 백 가지의 일하는 형태가 있고 그렇게 일하는 이유가 있다. 


다양한 노동의 형태, 삶의 모습을 청년들이 직간접적으로 어떤 형태로든 경험하거나 목도할 기회가 적은 것이 안타까운 지점이다. 그래서 청년들에게 일자리 상상력, 그러니까 일자리가 이토록 다양할 것이라는 상상력의 크기는 작을 수밖에 없다. 이십 대의 선택지란 앞서 말한 것처럼 좋은 기업에 취직하거나 공무원이 되거나 대학원생이 되는 것, 요즘은 청년으로 창업하는 것까지, 어떠한 형태로든 어딘가에 소속되거나 스스로 소속지를 만드는 방향이 전부다. 더 유연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을 모르거나 유연하게 살았을 때 사회적으로 나를 보호해줄 안전망이 없다는 이유로 프리랜서는 잠시의 ‘과정’이 되거나 선택하면 위험한 노동의 형태로 비춰지기도 한다. (객관적 사실이라 뭐라 반박하기 어렵다.) 그렇게 몇 가지 선택지에서 이십 대의 일의 거취를 정하고 나면 서른 즈음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이게 내가 원하는 삶이었나? 이대로 언제까지 일할 수 있을까?’ 


얼마 전 제주문화예술재단의 청년 문화예술 교육 프로그램의 컨설팅 자리에서 다른 컨설턴트와 이런 얘기를 나눴다. “사실 이런 프로그램은 30-40대에게 더 필요할지도 몰라요.” 청년 지원사업이나 정책 사업에서 지원자 중 대부분이 30대 초반부터 청년 정책의 마지노선 39세 사이의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프리낫프리 창간호에서 김민섭 작가와 인터뷰를 할 때 나눈 얘기도 비슷했다. 서른이 지나 우리는 새로운 답을 찾아본다는 것. 그제서야 나에게 맞는 삶이 무엇인지 다양한 일자리의 상상력을 펼쳐나가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업을 탐색하는 과정의 ‘일’, 생계로서의 ‘노동’ 


일자리의 상상력을 펼쳐 나간다고 해서 아름다운 결말이 있으면 좋으련만. 일에 있어서 나의 가능성과 상상력을 확대한다는 것은 무한 노동과 일이 쳇바퀴에 빠질 수 있다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다시 말해, 일자리의 상상력을 확보하면서 우리는 단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노동이 아니라 주체적으로 나에게 맞는 업을 탐색하게 된다. 그러나 이 탐색의 기간에 내 목구멍에 쌀알을 넘기게 해주는 것은 결국 생계를 위한 노동이다. 게다가 프리랜서는 노동만 해서 계속 돈을 벌 수 없다. 길어야 몇 개월 단위로 계약을 맺고 노동하는데, 현재의 노동에만 집중하면 이 노동이 끝난 후 벌이가 불투명하다. 꾸준히 내 업을 개발해야 어쨌든 이 업에서 파생된 노동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다. 결국 업을 탐색하는 과정의 ‘일’, 생계로서의 ‘노동’을 병행해야 하는 이중 과업의 상태에 빠진다. 


카페를 운영하고 그래픽과 편집 디자이너 일을 하며 웹툰을 그리는 프리랜서 지인이 있다. 그는 정말 바쁘다. 낮에는 카페에서 커피를 내리고 빵을 굽고 저녁에는 그래픽디자인 외주를 한다. 틈틈이 웹툰 콘티를 짜고 그림을 그린다. 쉴틈이 없다. 한 번은 내가 물었다. 편집디자인 일로 수익을 조금 더 내고 카페를 더 자주 쉬며 여유시간을 만들어 웹툰을 그리면 어떻겠느냐고. 그는 카페는 좋아하는 공간이자 가용 가능한 수준의 현금을 벌어다 주는 일, 웹툰은 성취하고 싶은 일이며 이 두 가지를 지속 가능하게 하기 위해 편집디자인 노동이라고 말한다. 


일과 노동이 완전히 분리되어 개인의 삶에서 돌아간다고 보기도 어렵다. 나는 이런 ‘일’과 ‘노동’이 적당히 분리되거나 교집합이 만들어지는 형태로 일한다. 내가 하고 싶은 ‘일’로 매거진 <프리낫프리 Free, not free>를 만들고, 프리랜서와 일, 여성을 주제로 이야기하는 팟캐스트 ‘큰일은 여자가 해야지’를 진행한다. 제주의 오름과 신화를 주제로 콘텐츠를 만드는 프로젝트 그룹에서 활동하고 있다. 생계를 위한 ‘노동’으로 매거진을 만들거나 문화와 콘텐츠 기획을 하고 컨설팅을 한다. 나의 ‘일’과 ‘노동’은 대체로 일의 속성과 분야가 교차하지만, 개인적 성취를 원한 일이냐 생계를 위한 노동이냐는 내가 얼마만큼의 주체성을 갖느냐로 구분된다. 


물론 바쁘다. 아침 10시쯤 일을 시작해 밤 10시에 노트북을 접을 때가 많다. 주말은 주말대로 행사에 참여하거나 주중에 처리하지 못한 일을 처리한다. ROI(Return of Investment, 투자로 인해 얻어진 수익을 말한다. 업무 효율을 평가할 때 지표로 쓰기도 한다.)도 낮다. 당장 수익이 되지 않는 ‘일’하는 시간의 비용을 당장 수익이 되는 ‘노동’에서 버는 돈으로 충당해야 하므로. 그러니까 시급 1만 원 짜리 ‘노동’과 시급 0원의 ‘일’을 병행하니 하루를 ‘노동’ 8시간, ‘일’ 4시간으로 쪼개면 사실상 12시간을 일해 8만 원을 버는 꼴이고, 실질 시급은 1만 원이 아니라 대략 6,666원쯤 된다. 


너무나 바쁜데, 왜 나의 소득은 바쁜 것에 못 미치는 수준일까 궁금하다는 질문에 제주에서 느린 글쓰기 공간을 운영하는 일을 하며 글 쓰기 노동을 하는 지인 프리랜서는 이렇게 말했다. 


“한 사람이 새롭고 유연한 업의 형태를 개척하는 것은 신규 사업 분야를 개척하는 것이나 국가에서 신규 정책을 개발하고 실행하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야. 회사는 자본이 있고 국가는 세금이 있어 버틸 수 있지만, 개인은 노동시장에서 버티고 버티며 고단하게 노동하며 모은 쌈짓돈이 전부니까. 그마저도 실패하면 모두 잃을 수 있다는 불안감으로 시도조차 못하는 사람도 많고. 그래서 노동시장이 경직되어 있는 것 같기도 해.” 


프리랜서에게 업의 형태를 개척하는 것은 하나의 회사가 꾸준히 수익을 만들어가는 지속가능성을 위해 새로운 브랜드를 개발하는 작업과도 같다. 회사는 자본금이 있어 브랜드 개발에 돈을 투자 하지만, 프리랜서는 자본금 대신 노동력을 투자해 자본금으로 치환하는 과정을 거쳐, 다시 나의 브랜드 그러니까 지속 가능한 업을 개척한다. 




일자리의 상상력이 부족한 정책


일자리의 상상력이 빈약한 것은 20대 청년만은 아니다. 아니 20대 청년은 필연적으로 일자리의 상상력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불안한 사회에서 주어진 선택지가 협소한데 어떻게 다양한 일자리를 상상할 수 있을까. 근본적인 문제는 정책에 있어서 일자리 상상력의 부재다. 단지 돈을 버는 ‘노동'만으로 개인의 삶이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개인은 점점 깨닫고 있다. ‘4차산업 혁명'이라고 명명된 시대에서 노동과 일자리의 변화 또한 매우 급격하게 진행되고 있다. 아니 이렇게 거창하게 가지 않더라도 이미 나와 내 주변의 사람들은 전통적인 방식의 ‘고용'형태의 노동이 아닌 자기만의 유연한 업의 방향과 태도를 만들어가고 있다. 


- 비정규직 근로자 증대

- 취업난 심각해

- 정규직 증대를 위한 정책 마련 시급


공허한 말들이 뉴스 기사의 헤드로 올라온다. 아직도 완전고용만이 답이라고 외치는 정책 방향을 볼 때마다 가벼운 한숨이 흘러 나온다. 


‘일이 점차 사라져 소멸점에 도달하는 바로 이 시점에 모든 사람들이 하나같이 일의 장점에 대해서만 몰두하고 있다. “완전 고용"은 오늘날 여야를 가리지 않고 정당의 목표가 되었지만 이는 불가능하고 또 불필요하게 되었다.’ - 노 모어 워크, 제임스 리빙스턴 (내인생의 책 출판)  


정확히 말하면 일이 아니라 일자리가 점차 사라지고 있다. 그 변화는 이제 막을 수 없다. 자본가는 자본가에게 더욱 유리한 방식으로 (시간제 근무라든가, 파견직 같은) 개인을 노동하게 할 것이다. 완전고용을 달성하려는 수많은 정책이 나오는 이유는 결국 일자리의 상상력이 없어서다. 개인에게 지속 가능한 업으로서의 ‘일’이 아니라 ‘노동’을 하라고 말하는 목소리다. 사회는 급변하고 있고, 노동시장은 점점 더 유연해질 것이다. 몇 가지의 안정적인 선택지만 알고 거취를 정했던 20대의 청년은 이제, 다양한 삶의 모습을 발견하며 새로운 일자리의 상상력을 펼칠 것이다. 막을 수 없는 변화이고 지금 청년들이 살아가는 모습이다. 


‘완전 고용' 신화가 그저 신화인 것을 받아들이는 것부터 청년 일자리 정책의 시작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다양한 형태의 일하는 모습을 조사하고 그들의 삶에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짚어보는 것, 개인이 일자리의 상상력을 확보하고 지속 가능한 업의 형태를 꾸려갈 수 있도록, 그리고 급변하는 사회에서 도태되지 않고 꾸준히 일할 수 있는 감각과 태도를 함양할 수 있도록 돕는 정책의 모습들이 나와야 할 시점이다. 생계로서의 ‘노동’이 아니라 개인이 지속 가능한 업으로서의 ‘일’, 창의적이고 생산적인 ‘일’을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는 것이 국가가 개인에게 가진 책임과 의무가 아닐까. 그렇게 되면 언젠가 “어떻게 프리랜서로 일하게 됐어요?”라는 질문이 아니라 “프리랜서로 어떤 일을 하세요?”라는 질문이 더 많아지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