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0.25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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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수당, 다시 만나는 나와 일상> 


청년수당을 받기 시작한지 3개월이 지났다. 그동안 있었던 일을 회고하자니 정말 열심히 살았구나 싶다. 3개월이 하루처럼 지나갔다. 수당을 받으면서, 3개월 전의 나에게, 그리고 3개월 후의 나에게 편지를 쓰는 프로그램에 참여했었다. 사실 완전히 잊고 있었는데 오늘 내 앞으로 도착한 ‘편지’를 보니 ‘아’하고 기억이 났다. 핸드폰 요금 아니면 기타 공과금을 내라는 지로명세서가 아닌 그야말로 사람이 사람에게 쓰고 보낸 편지, 참 오랜만이다. 편지를 손에 쥐고 방으로 오는 사이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 내가 나에게 쓴 편지에도 이렇게 설렐 수 있나. 취업 준비만 하다 보니 정신이 조금 나갔나보다.



안녕

3개월 뒤에 나에게 쓰는 편지라니 너무 어색하지만 용기를 내본다.

너라고 불러볼게.

우선 너를 칭찬해주고 싶어. 청년수당을 신청하고 프로그램을 뒤적이는 열정이 너에게 남아있는지 몰랐어. 

지난 몇 개월간 고시원에 살면서 찾아온 우울증상 때문에 취업 준비는커녕 일상을 챙기는 것도 너무 버거웠었는데… 우연히 청년수당 공고를 보고 신청하고, 선정되었다는 문자를 받았을 때 ‘아… 숨쉴 구멍이 생기겠구나’하는 기분이 들었지. 그 작은 결정과 노력이 지금의 너를 어제와는 다른 조금은 희망을 품을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주었어. 

3개월 동안 열심히 지내보자! 

사람들 대타를 뛰면서까지 아르바이트만 했던, 시간과 마음에 여유가 없는 지금의 내 삶이 조금은 달라져있길!                

                           


참 차분하게도 썼네. 청년수당을 신청하기 직전의 나는 인생에서 가장 어두운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얼마나 살았는데 그런 소릴 하냐고 뭐라고 할 수도 있지만, 여하튼 진짜 그랬다. 길진 않지만 고시원에 살 때 특히 더 심했던 것 같다. 내 몸 누일 공간이 있다는 게 어디냐라고 할 사람도 있겠지만. 모두가 최악이어야만 괴로움을 토로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생활에 여유가 없어지면, 가장 덜 유용하다고 생각하는 것부터 일상에서 제외하게 된다. 영화를 보거나, 책을 보거나, 이유없이 친구들을 만난다거나… 괜히 윈도쇼핑을 해서 소유욕이 생기게 되거나, 사람들 많은 거리에서 멍 때리다가 ‘나 빼고 다 행복해 보이네’라고 울적해지는, 경제적이지 못한 시간을 보내고 나면 자책도 하게 된다. 이런 증상이 심해지면 나와 가까운 것들, 내게 중요한 것들도 외면하게 되는데 이를테면 베프와 가족이 그렇다. 언젠가부터 엄마 전화를 받는 게 너무 싫었다. 미안한 마음도 크기가 커지니 싫다는 부정적인 마음으로 변해버렸다. 취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사람을 만난다 하더라도 외출은 곧 지출이다. 그만큼 활동이 위축되었다. 


청년수당을 받고 나서 가장 좋았던 것은 50만 원이 생겼다는 단순한 기쁨이 아니라, ‘여유'와 ‘여가'를 즐겨도 된다는 안도감이었다. 필요에 의한, 생산적인 활동이 아니라 단순히 ‘나의 기쁨'을 위해 사용할 시간과 돈이 생겼다는 기쁨. 내 일상에 빈틈을 다시 끼워 넣어도 된다는 것이 정말로 기분 좋았다. 


제일 먼저 본가 행 기차표를 끊고, 친형을 만나서 순댓국을 사줬다. 형이 한사코 부인했는데, 내가 고집부려서 결제했다. 뭐 얼마 하지도 않는데 되게 미안해하는 형을 보니까 마음이 찡했다. 얻어먹는 것보다 사주는 순댓국이 이렇게 맛있었나. 고향에서 갑작스레 2박 3일 정도 아르바이트할 거리가 생겼다. 때문에 예상보다 며칠 더 머무르게 됐다. 내가 하게 된 일은 경호 알바였는데 정장 비슷한 옷차림이 필요해서 넥타이와 와이셔츠 그리고 운동화를 구입했다. 나는 상인회, 경찰, 경호 관계자들, 사측과 노조 중간에서 갈등을 저지하는 역할을 해야했다. 그 과정에서 누구도 다치지 않도록 애써야 하는 게 나의 일이었다. 일하는 중간 중간 상인회 어르신들이 고생한다고 음료수를 주시며 어깨를 다독거려주셨는데 기분이 묘했다. 일하는 사람들, 노동하는 사람들이 갈등하는 모습을 보니 일을 구하는 입장에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됐다. 일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어떤 일을 찾아 어떤 사람들과 어떤 환경에서 일하게 될까. 


서울로 올라오기 전에는 엄마랑 몇 시간 정도 데이트를 했다. 짧은 거리지만 드라이브를 하기로 했는데 도중에 주유소에 멈춰 엄마 차에 기름을 넣어드렸다. 물론 만땅을 외치진 못했지만. 감동 받은 엄마가 맛있는 돌솥비빔밥도 사주고, 따뜻한 아메리카노도 사주셨다. 엄마 차를 탈 때면  엄마가 운전석에 앉고, 내가 늘 보조석에 앉는다. 언제쯤 엄마를 옆에 태울 수 있을까하는 생각을 잠시 하기도 했다.


오랜만에 찾은 본가에서 뭔가 기묘한 시간을 보내고 온 것만 같다. 돌아오는 기차에서는 대부분의 시간을 잠으로 보냈지만, 간만에 마음 편한 꾸벅거림이었다. 그래도 짧은 시간동안 몇 가지 생각이 스쳐갔다. 내 자신이 주축이 되어 좋아하는 것을 누리고 선택한 적이 별로 없다는 것, 위축될 때는 제일 먼저 나를 잊는다는 것 말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내가 나를 잊었을 때도 나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확인해서 좋았다.


편지를 다시 봉투에 넣어 잘 보이는 곳에 세워둔다. 아! 이번달 생활비가 얼마 남았지…? 마음 속으로 헤아리다가, 어제 결제한 인터넷 강의를 켜본다. 하암. 그래도 공부는 지겹구나. 하품이 난다. 그래도 다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