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0.25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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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B 매거진 3호 - 현장스케치

나로부터 시작하는 일 찾기

: 진로탐색 프로그램 현장스케치




“무엇을 할 용기가 없고... 뭘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끝없는 진로 고민... 어떻게 하면 지치지 않고 잘 시작할 수 있을까요?”

“내가 가는 길이 맞는지 모르겠어요...”

- 진로탐색 참여자 의견


한 사람의 삶을 구성하는데 큰 축이 되는 진로와 일. 누군가에게는 행운처럼 쉽고 선명하게 보이는 것일 수도 있지만, 또 누군가에게는 애석하게도 술래잡기마냥 찾을 듯 말 듯 쉽게 다가오지 않고, 때로는 거대한 미로나 망망대해에 놓인 양, 지난하고 막막한 분투의 대상이 되기도 하다. 


센터가 지원하는 진로탐색 프로그램의 출발은 취업률이 아닌, ‘나’이다. 청년들이 자신의 방향성에 맞게 진로를 탐색할 수 있도록 자기를 먼저 이해하고, 자기의 강점과 가치를 발견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정보제공’ 프로그램 중 참여형 워크숍 ‘그 일은 어떤 일일까’의 현장 스케치를 통해 진로탐색 프로그램을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본다.


그 일을 원하는 나는 어떤 사람일까

가을이 무르익어가는 느지막한 9월, 신촌 띵크홀에 약 스무 명의 청년이 모여있다. 네 개의 테이블에는 3~4명의 청년들이 둘러앉아있다. 대부분 초면인지라 설레면서도 어색한 표정이다. 취업을 준비하는 비슷한 단계에 있는 같은 마음을 지닌 동지라는 사실이 이들을 묶어준다. 낭창낭창한 목소리의 강사님은 서먹한 청년들의 마음을 읽은 듯, 유연하게 강의를 진행한다. 굳어있던 분위기는 조금씩 풀어지고, 집중하는 또렷한 눈빛들이 스크린으로 쏟아진다. 


스크린에는 감사, 겸손, 경청, 공감, 공정함, 성취감, 용서, 우정, 정직, 건강 등... 약 50가지 가치관이 적혀있는 ‘가치 목록표’가 보인다. 강사님의 안내에 따라 50가지 가치 중 나에게 중요한 다섯 개의 가치를 골라야 한다. 50개 중에 다섯 가지를 골라내는 일은 쉽지만은 않아서, 청년들은 오랫동안 고심하며 골랐다 지우기를 반복한다. 

 


강사가 제시하는 프리젠테이션을 보며 ‘가치 바퀴’ 채우기를 진행하고 있는 모습 


다섯 가지 가치를 고른 다음에는 그 가치를 추구하는 나의 가치 만족도를 체크한다. 일명 삶을 움직이는 ‘가치 바퀴’ 채우기다. 예를 들어, 정직을 고른 나는 내 스스로의 정직함에 어느 정도 만족하고 있는지 색칠을 통해 표현해보는 것이다. 집중한 얼굴, 종종 묻어나는 한숨, 갸우뚱하다 지우고 덧칠하길 반복하는 손. 모두가 사뭇 진지하다. 


모두가 선택을 완료하는 데는 꽤 긴 시간이 흘렀다. 강사님은 참여자들을 재촉하지 않고 충분히 고민하도록 시간을 주었다. 가치를 고르고 선별하는 과정에서, 참여자들은 자기 자신을 들여다볼 기회가 생긴다. 그리고 그것을 해석해보며, 내가 중요하게 생각해온 것들을 다시금 상기한다. 무엇이 나를 기쁘게 하는지, 무엇이 나를 좌절하게 하는지를 깨닫는 과정이다. 


"취업 준비를 제대로 시작하기 두렵고 막연했는데, 

나에 대해 알아가며 자신감이 생겼고 이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참여자 후기 -





사회의 요구나 정답이 아닌, 안전한 곳에서 ‘나’를 집중하는 시간

프로그램을 진행한 강사 한희가 말하는 진로탐색 프로그램의 특징은 ‘나와 일’의 관계를 본질적으로 바라보는 것에 있다고 말한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추구하는 가치, 내가 잘 할 수 있는 것들을 잘 알고 있을 필요가 있어요. 자기가 어떤 걸 재미있어하고, 어떤 것에 분노하는지, 어떤 바람을 가지고 있는지를 아는 것이 직무를 이해하는 것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에요. 이왕이면 내가 원하는 것을 일로서 할 수 있는 게 좋지 않을까요? 인사담당자, 기업, 면접관들이 좋아하는 내가 아니라 내가 원하고, 내가 좋아하는 일에서 출발한다면, 좀 더 사랑할 수 있는 일을 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 <그 일은 어떤 일일까> 강사 한희


강사님은 청년들을 취업률로 보지 않고, 건강한 삶을 지원하는데 집중 지원한다는 점에서 서울시청년활동지원센터를 신뢰하게 되었고, 현재 센터와 함께 여러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진행하고 있다. 


“현장에서 청년들에게 질문을 많이 받아요. 그런데 진짜 궁금한 점을 묻기보다는 취업에서 받을 법한 질문을 물어보고 그에 대한 저의 답변을 받아적어요. 물론 그런 준비도 필요하죠. 하지만 그건 자기의 답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답이잖아요. 우리는 살면서 ‘공통의 답’을 선택하도록 강요받으면서 살았어요. ‘정답’이라는 게 있고 모두 그것을 선택해야 하는 것처럼요. 하지만 그건 누군가의 정답이죠. 나의 정답을 찾으려면 나의 가치, 감정, 정보를 잘 알고 그에 맞는 답을 내놓을 줄 알아야 하는데, 대부분은 그런 훈련이 안 되어 있어요. 자신이 찾는 답에 확신이 없는 거죠.” 

- <그 일은 어떤 일일까> 강사 한희


“무작정 자소서에 대한 기술 설명과 작성이 아닌, 나를 분석하고 알아볼 수 있는 충분한 과정을 통해 자소서를 작성하니 작성하는데 휠씬 수월했습니다.” 

-참여자 후기


그 어느 때보다 참여자들의 진지한 분위기에서 진행된 프로그램을 마치며 강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취업을 위한 자기 발견만큼 씁쓸한 일이 있을까요?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대학이 원하는 자소서를 쓰고, 취직하기 위해 기업이 원하는 것들로 조작한 삶은 실제로는 거짓에 가깝잖아요. 실제로 많은 취준생들이 스스럼없이 자기가 썼던 거짓말을 고백해요. ‘하루 일했는데, 한 달 했다고 썼어요.’라던가. ‘자소서는 소설이죠’라고 당연하게 말한다던가. 자소서는 글발, 면접은 글발이라는 인식도 이런 현실에서 기인한다고 생각해요.”  

- <그 일은 어떤 일일까> 강사 한희



자기이해, 자기표현, 정보제공, 서울잡스 이상 네 가지로 구분된 서울시청년활동지원센터의 진로탐색 프로그램은 ‘나로부터 시작하는 진로탐색’을 지원하여, 청년들이 좌절하지 않고 적성에 맞는 진로를 찾아갈 수 있도록 돕는다. 청년수당 참여자 외에도 서울청년이라면 누구나 참여 가능한 이 진로관련 프로그램은 구직, 진로찾기 과정에서 어떤 것이 필요할지 필요와 욕구에 따라 기획되었다. 이 모든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이해’라는 사실을 전제로 한다. 직무에 대한 이해에 앞서, 나를 이해하고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 선행된 프로그램을 통해, 청년들은 나를 믿고 더 오래갈 수 있는 힘을 키운다. 


오랫동안 취업 시장에 내몰릴수록, 스킬이나 비법에 집중하게 되거나 정작 나에게 필요한, 내가 하고자 하는 일에 관해선 점점 생각할 기회가 적어지는 경우가 생기곤 한다. 그러나 서울시청년활동지원센터의 진로탐색 프로그램은 결과가 아닌 과정, 과정에 앞선 본질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취업 준비’생’을 ‘한 명의 사람’으로 다시 바라보도록 노력하고 있다.